빛이 빚이 되어버린 순간
평소 나 자신을 창의적이라고 생각하며 주변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어느 정도 운과 시기가 맞아서 사업계획서 하나만으로 6000만 원의 투자금을 유치하고 1억 9500만 원의 사업 자금을 보증받을 수 있었다.
통장 안에 보이는 0의 갯수를 세어보며 이게 진짜 돈인지 단순한 숫자 놀음인지 알게 뭐람.
어찌 되었든 나는 가슴 한 켠에 자리 잡은 꿈을 위해 일을 할 수 있었으며 빛나는 미래만을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다.
빛과 같았던 내 통장이 빚으로 되어 버린 것은 사실 순간이 아니다.
사업을 하면서 나는 많은 결정들을 했었고,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시그널이 곳곳에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상황까지 만들어 진다면 그까짓 시그널 정도는 한 방에 엎어버릴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있다고 믿고 있었고,
그런 날은 결국에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마도 법인 통장에 3000만 원 남짓 남았을 때였다.
정리를 했어야 했다.
사무실을 정리했어야 했고, 직원들의 마지막 월급과 퇴직금을 챙겨 줘야 했으며, 내게 남은 단 하나의 비장의 카드를 성사시킨다며 일본 출장을 다녀오니 통장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마지막 3000만 원에서 0으로 바뀌기까지 불과 10일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사실 직원 줄 퇴직금이 모자라서 차량 담보 대출도 받았다.)
사업을 접었을 당시 나에게 남겨진 빚이 무려 2억 6000만원이었다.
무려 260,000,000원(₩)
엄청난 금액이 당황스럽지만 더더욱 당황스러운 건 빚이 2억 9000만 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굳이 찾아보니 2억 8000만 원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너무나 큰 금액에 2억 9천만인지 2억 6천만인지 인지할 정신도 없었다.
굉장한 실패를 경험함과 동시에 가슴속 깊이 깨달은 것은
-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무능력한 사람이었으며,
- 편한 길만 찾으며 허송세월을 보낸 과거의 나와 사업할 당시의 나는 전혀 바뀐 것이 없었다는 점
- 다시는 나는 도전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
이 세 가지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소름 끼치는 사실은 지금 나 역시 그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달라진 것이 있다.
꿈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애플리케이션 설계도는 넝마가 되어서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내 가슴을 뛰게 했던 꿈은 이제 미련이 되었다.
사기꾼
나와 10년 넘게 친하게 지내는 내 학창 시절을 빛내줬던 친구들.
나를 존재하게 해주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
사업자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
등등...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어딜 가든 모나지 않은 성격에다 먼저 다가가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편이라 친밀한 관계를 잘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돈이 들어가면 다른 이야기가 생기고 다른 입장이 되어 버리게 된다.
엔젤투자 형식으로 나에게 투자를 했던 투자자와의 관계가 그랬다.
법인 설림 당시 우리 회사 지분을 받고 6000만 원을 투자했던 투자자는 결국 원금을 돌려달라며 나를 고소를 했고,
나는 사기 혐의로 경찰서를 왔다 갔다 했어야 했다.
초기 투자금은 사무실 보증금과 어플 개발 비용으로 다 소진했던 나는 자금 소비의 타당성을 인정받았고,
무보수 이사로 18개월, 그 후 월급 50만 원을 책정해서 6개월 받은 것이 다인 나는 당연히 공금 횡령, 자금 세탁 등 사기죄로 감방에 들어갈 혐의가 없었다.
그렇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나는 너무도 명백한 사기꾼인 것이었다. 당연하다.
빚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는 사실도 너무 힘들지만 '이 세상 사람 중 어느 한 명에게는 내가 사기꾼이겠구나.'라는 사실에 잠을 못 이룰 때가 많았다.
또한 내 마음도 간사해서 섣불리 투자자에게 원금은 어떻게 해서든 갚아 드린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도 너무 괴로웠다.
당시의 그 기분을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 뒤 자락이 뜨겁다.
아!! 뜬금없는 이야기이긴 한데 드라마나 영화 같은 곳에서 스트레스를 극한으로 받게 되면 왜 배우들이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연기를 하는지 이때 처음 알았다.
생각만으로도 어지럽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머릿속에서 어떤 계산을 때려봐도 미래가 보이지 않던 그때 승모근에서 목 근육으로 넘어가는 그 근육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지고 시큰한 것이 이 상태로 '목을 뜨겁게 하는 이 피가 뇌까지 흘러버리면 뇌가 익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조금만 더 그 상태가 지속되었으면 아마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 되었던 나에게는 해결해야 하는 큰 과업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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